6. 당근에서의 1년


나는 이전부터 당근을 굉장히 좋아했던 유저이다.
따뜻함이라는 아이덴티티도 좋았고, 로컬을 연결한다는 비전도 좋았다. 엔지니어로서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치열한 고민을 한다는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근에 입사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너무 잘하고싶었던 탓인지 첫 몇개월 간은 좀 고됐었다. 뛰어난 동료들이 많다는건 그만큼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나의 부족한 점이 보인다는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좀 힘들어했던 것 같다. 모두가 나보다 잘하는 것 같고, 나보다 똑똑한 것 같았다. 나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고, 소위 말하는 임포스터 신드롬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가장힘들었던 때에 운좋게 정말 뛰어난 나의 리더들이 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주었고, 그로부터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나의 '단점'이 튀는 환경 때문이었고, 이건 성격과 연결되어있는 것이라서 고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거였다.
그런데 몇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나의 단점은 실제로 '단점'이라기보다는 '약점'에 가까웠다. '단점'이 '약점'이라고 명명되고 나니, 많은 것이 다르게 보였다.
나는 꾸준히 나의 약점을 소거해야한다고 믿어왔다. 더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내 주위에 드글거리는 이들 처럼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하면 스트레스만 받는다. 그래서 문득 깨달은건, 내가 저들처럼 될수 없으면 나는 나만의 강점을 세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약점과 강점은 한 몸이다. 따라서, 내 강점의 근원이 더 이상 약점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강점에 집중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된다.
이토록 쉬운 것을 깨닫고 행동하기 까지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깨닫고 나서 부터는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되니, 흐릿했던 커리어의 방향성도 조금씩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옮긴 팀에서는 정말 좋은 기회도 얻었다. '당근 동네걷기(a.k.a 만보기)'라는 서비스를 MVP 부터 만들게 되었는데, 하드스킬/소프트스킬 모두 강도 높았던 과제였다.
처음에는 이 짧은 기간동안 웹뷰와 네이티브 경험이 없는 내가 잘 해낼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꾸역꾸역 하다보니 해내었다. 기술/협업적으로 많은 책임을 질 수 있었고, 내가 내린 결정의 부채도 갚아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또한, 제품이 정말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서 우리가 의도한대로 제품을 사용해주는 유저들이 늘어나서 뿌듯함 드리븐으로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당근에서의 1년은..... 당근 이전의 1년의 경력만으로도 매너리즘에 빠져서 오만해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1년이라고 말하고싶다.
다음 1년동안은 더 즐겁게, 더 챌린징한 과제들을 많이 뿌수고싶다.